■ 석가 탄신일-선암사,불일암, 송광사.--법정ㅇ 무소유

불기 2570년, 부처님 오신 날 산사는 녹음으로 푸르렀다.
<선암사>

불교가 1700년 전 우리나라에 전래된 이후로 항상 백성과 희로애락을 함께해 왔다.
대한민국의 법정 공휴일인 '부처님 오신 날'은 석가모니 탄생일이다. 
음력으로 4월 8일이기 때문에 사월 초파일로 불린다.
석가모니가 태어난 곳은 현재 네팔의 영토인 룸비니라는 곳이지만 불교의 근원지는 인도로 본다. 
누구나 태어나면 죽는다. 그런데
'탄신일'과  '불기'가  다르다.
부처님 오신 날은 탄신일이지만,  '불기'는 열반한 해를 기준으로 삼는다.
부처님이 80세에 열반하신 해를
원년(1년)으로 '불기'를 정했다.
2026년은 부처님이 열반하신지 2570년이 된 샘이다.
불기 2570년 이런 사실을 모르고 공휴일이라고 그냥 쉬고 놀았다.
이 사실은 템플스테이를 하며  알게 됐다. 한국 불교 최고의 문화상품은 템플스테이지 싶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시작된 템플스테이는 종교에 관계없이 마음을 쉬어가는 숙박 힐링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우리나라는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과 전국에 10개의 경기장을 건설했다.
문제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의 숙박시설이었다.
전국에서 경기가 열리는 월드컵을
위한 지방의 숙박 인프라는  태부족상태였다. 이때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전국 각지에 있는 사찰이었다.
한국의 전통 문화를 체험하는 동시에 숙박 문제를 해결하자는 아이디어였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조계종은 사찰에 외국인 관광객을
묵게 하기로 합의하고, 사찰(temple)과 머물다(stay)를
합쳐 '템플스테이'로 이름 붙였다.

국립국어원도 템플스테이를 '신어'로 등재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원래 사찰에는 1인실이란 개념이
없었다. 노스님들 외에 스님들은
공동생활이었는데 화장실과 샤워
시설을 갖춘 1인실이 점차 늘어나게 되었다.
<불일암>

숙박은 하지 않고 사찰 견학과 다도. 참선.체험만 하는 '당일형 상품'이 있고,  1박 하면서 새벽.저녁 예불에 참석하고 108배와 참선 체험, 스님과의 차담 시간을 갖는 '체험형' 상품이 있다. 나는 숙박은 하되 어떤 간섭도 받지 않고 휴식만 하는 1인 실  '휴식형 상품'을 이용했다. 덕분에 조계산 선암사와 송광사, 불일암을 밟았다.

"보살님!" 하고 부른다. 낮설다.
보살은 생명체를 가진 모든 존재
에게 쓰는 최상의 호칭이다.
그런데 산 이름이 조계산이다. 
중국의 육조 혜능이 살던 조계산에서 이름을 빌려와 조계산이라고 했다. 조계종이라는 종단 이름도 육조 혜능대사가 살던 조계라는 동네에서 유래됐다. 혜능의 선종 법맥을 잇는 종단이라는 뜻이다.
같은 조계산 산등성이를 마주 보고
선암사와 송광사가 있다. 모두 천 년이 넘는 사찰이다.

동쪽에는 태고종 선암사가 있고,
서쪽에는 조계종 송광사가 있다.
산길로 불과 8km 떨어져 있다. 역사적으로는 선암사가 조금 앞선다. 선암사에서 소설가 한분을 만난다. '태백산맥'의 조정래 작가
부친이 선암사 부주지를 역임한
조종현 스님이다. 교과서에 나온
'나도 푯말이 되고 싶다'를 쓴 스님
은 선암사 승탑전에 모셔져 있다.
그래서 이 부도전은 <태백산맥>에
접선 장소로 등장한다.

조정래는 선암사에서 태어났다. 선암사는 스님의 결혼과 가정을 허용하는 대처 전통을 가지고 있다. 부산에서 선암사까지 2시간 남짓 밖에 걸리지 않는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돌다리
'승선교'를 먼저 만나는 선암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산신각>

송광사와 화엄사를 말사로 둔 태안사도 대처승 사찰이었다.
주지의 아들로 태어나 '국토'의 시인
으로 불린 조태일도 태안사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태안사의 '태'자를 빌려와 태일이란
이름을 지어 준 아버지는 곡성경찰서의 지휘본부가 태안사에
있을 때 주지였다.
연작시 '국토'를 통해 장기집권에
저항했고 육군본부로 끌려가 연행. 구금됐다.
58년만 살다간 싱거운 사람이다.
고려시대 불교가 권력과 밀착되어
매우 타락하자 지눌스님은 명리를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가 오직 수행
에만 전념하자는 정혜결사 운동을
펼첬다.지눌 스님이 송광사에서 
선종의 전통성을 다시 세웠다.
조계종은 지눌의 법맥을 잇고 있다.
승보 사찰 송광사 제일 위에는
스님들이 계신다. 국사전이다. 
송광사에서 활동한 큰스님 16분의
영정을 모시고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이 국사전이다.

2012년 방송에서 '나는 자연인이다' 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친 현대인들이 자연 속으로 들어가 몸과 영혼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송을 시작했다.
자연인의 단순 소박한 삶을 TV가 아닌 책으로 먼저 보여준 게 법정의 '무소유'였다. 
이 책은 1976년 출간됐다. 무소유를 말하자, 인쇄비가 넘치기 시작했다.
폐암4기에 대상포진도 왔다.

더 많이, 더 빨리, 소유하기 위해 세계에서 전무후무한 속도로 질주하던 산업화시대에 인권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청계천변 노동자 전태일은 살아있는 예수였다.

산사에 있어야 할 법정스님이 함석헌과 손잡고 거리 위로 나섰다.
그러더니 어느날 스님이 홀연히 사라졌다. 민주화운동에 회의를 느끼고 불일암으로 들어와 혼자서 17년을 살았다. 
<무소유의 삶을 살겠다.>

인혁당 사건으로 8명의 생 목숨이 하루아침에 죽는 것을 보고 독재자에 대한 증오심을 풀 길이 없어 1974년 송광사 산내 암자인 불일암에 들어와 17년을 살았다. 여기서 "무소유'의 책이 출간되고 법정이 세상 밖으로 알려진다.

함께 민주화운동을 했던 함석헌이 어느날 찾아오자 감자를 삶아주며 아이처럼 부끄러워 했다.
'씨알의 소리'를 함께했던 함석헌과는 민주화 동지였다. 함석헌, 김지하, 성내운, 김동길은 길 위의 동지들이었다.
종교를 넘어 김수환 추기경과 평생 각별한 도반을 유지했다. 
송광사에서 다비식을 하고 갔지만
법정스님은 생각을 주고 가셨다. 
<송광사--법정스님  다비식>

법정의 당부는 "고립되지 말라"였다. 
의상이 화엄학을 10년 공부하고 내린 사자후는 딱 한마디 뿐이었다.
"본래 중생이 부처였다."  
평법한 사람들 안에도 이미 부처의
불성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거울에 먼지가 쌓이면 얼굴이 비치지 않지만 거울 자체가 망가진 것은 아니다. 닦아 내면 본래의 맑은
빛을 되찾듯 중생의 마음 속 욕심,
분노,집착이 이를 가리고 있다.
그래서 부처와 중생의 차이는  마음의 먼지를 얼마나 걷어 냈는냐에
달렸다고 본것이다.

부쳐는 불경 속에 있는 게 아니고, 우리들 삶 속에 있어야 한다고 천 이백년 전에 이런 걸 가르쳤다. 
원효는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고 했다.
핸드폰 충전하듯, 마음의 심지 빵빵하게 충전하고 돌아간다.

                             죽산  권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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