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방탄소년단의 광화문 컴백 라이브
공연이 생중계를 통해 190여 개국
에 동시 생중계됐다.
한국을 상징하는 '아리랑' '광화문'
'한글'을 전세계에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 문화유산을 BTS가
알려주고 있었다.
또, 광화문이 '세계의 중심'이 됐다.
무대 뒤를 뚫어 광화문이 한눈에
보이게 했다.

광화문을 서울의 심장이자 대한 민국의 상징적 공간으로 전 세계
에 각인 시킨 공연이였다.
경복궁 근정전과 흥례문, 광화문을
흝는 드론 샸으로 막을 올렸다.

조선 왕궁의 정궁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은 직사각형 무대 조형물 안에
액자처럼 담긴 모습을 1시간 동안
전 세계 190국에 생중계됐다.

아리랑이 광화문 광장에 울려 퍼졌다. 선율이 구슬프지 않고
활기찬 것도 인상적이었다.
주제는 민족의 혼이 서려 있는 전통
민요 아리랑이었다.

성덕대왕신종의 종소리가 울렸다.
깊은 울림의 '두웅~' 소리가 딱
한 번 들리고 이후 신종의 특징인
맥놀이(소리의 강약이 반복되며
길고 은은하게 계속되는 현상)가
끊어질 듯 이어진다.
한국의 범종 소리는 서양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세계다.

부처님 말씀을 글로 옮기면 불경이
되고 부처님 모습을 형상으로 옳기
면 불상이 되듯이 부처님 목소리를
옮겨놓은 것이 종소리라는 것이다.
아미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라'
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들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을  대신해 말하고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이게 위로를 건넨다.

부산에는 지민이와 정국이의 흔적
을 찻아 걷는 길위의 인문학이 인기다. 아미들로 부터 시작됐다. 

■ 지민이는 회동초(금사동, 179번
버스 종점,회동수원지 출발지)졸업
했고, 윤산중학교를 졸업했다.
매력적인 음색으로 도입부를 사로잡아 '도입부 장인'으로 불린다.
그의 목소리로 성별의 경계를 허문다. 몽환적이고 관능적인 가성
에 능하다. 본명이 박지민이다.
[지민이의 길 걷기]---금정구
회동초(회동마루)-미로시장(맛나분식, 지민이 단골 떡볶이집)-윤산 중 산책길---회동수원지 황톳길--
부산예고 현대무용 전공. 전체 수석 입학 출신이다
입학식 때 대표로 선서를 했다.

■ [정국이의 길 걷기]---북구.
정국이가 살던 레고마을부터
시작해,  다녔던 학교를 탐방하고,
(백양초. 백양중 졸업. 만덕
레고 마을).  본명이 전정국. 막내다.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은 6명의 형을 만난것" 이라 말한다.
만덕 오리 민속마을---'석불사'를 걷는 관광 상품이다.

■ 제이홈--본명이 정호석이다.
광주 출신으로(1994년),2010년
연습생 계약을 맺고 상경했다.
광주 출신을 노래로 알렸다.
광주를 향한 헌사를 바친다는 4집 소록곡"Ma City"에 나 "전라도 광주
baby/내 발걸음이 산으로 간대도
무등산 정상에 매일매일(중략)/
모두 다 눌러라 062--518"/
그는 광주 지역 번호인 062와 5.18
민주화 운동을 결합해 가사에 넣었다. 해외 아미들이 광주를
방문해 5.18묘역을 찿았다.


해외 팬들에게 한국 역사를 알리는
K팝 아티스트의 영향력을 보여줬다.
제이홉의 춤에 반한 아미들이 많다.
데뷔 전 그는 광주의 언더그라운드
스트리트 댄서로 이름을 날렸다.

▪︎BTS가 '한국말로해서 미안해" 
하며 겸손해 하자,
▪︎아미들-"아니예요, 우리가 한국말 배울께요."  한다.
감동적인 대화가 오간다. 어디서
이런 모습을 만날 수 있을까?

BTS의 다큐멘터리 영화--'BTS:더 리턴'에 담긴 멤버들의 육성 중 이들
의 시작점을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낸 표현에  "우리는 여전히 한국에서 온 촌놈이란 사실,,,,입니다."

2013년 6월13일 맴버들의 나이는
뷔(18세),제이홉(19,세),슈가(20세), 진(21세). RM(19세).
지민(18세) 정국(16세).였다.
2018년 국내 최연소 화관문화훈장
수훈자가 됐고, 한국 가수 최초로
UN 총회 연설자로 섰다.
2026.03. 21. BTS가 왕의 길을
걸어나와 광화문 광장 무대에 올랐다. 

■리더 RM--본명이 김남준이다.
1994년 서울에서 테어나 다섯 살
때부터 경기도 일산에서 자랐다.
과학고 영재출신이다.
처음부터 아이돌을 꿈꾸진 않았다.
래퍼가 되고 싶었고, 그보다 더
어릴 때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중학생 시절부터 직접 작사한 랩을
힙합 커뮤니티에 올리고, 홍대에서
공연을 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2010년 빅히트에 입사해 BTS의
첫 번째 멤버가 됐다.
당시 대표가 방시혁인데" RM은
방탄소년단을 만든 계기였다." 고
말했다.
메인 래퍼로 중저음의 목소리로
무게감 있는 랩을 들려주면서도
작사, 작곡에 참여해 곡의 메시지
와 앨범의 흐름을 설계해 온 멤버다.

시적인 표현과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는 '지적인 래퍼'로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내면을 파고드는
가사가 특징이다.

서울 한강변을 걸으며 썼다는 노래
에서 자기 혐오를 이렇게 은유적으로
풀어낸다.
"세상은 절망의 또 다른 이름/
나의 키는 지구의 또 다른 지름/
나는 나의 모든 기쁨이자 시름/
매일 반복돼 날 향한 좋고 싫음/"

이 노래의 마지막 구절이 이렇다.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가 전세계 청춘들에게
전한 메시지는 "너 자신을 사랑하라"
(Love Youself)로 연결된다.

그를 설명할때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는 '독서'다.
유튜브 영상 속 RM이 읽던 책이
팬들에게 포착되면서 절판됐던
책이 20년 만에 재출간되는 일도
있었다.
이성복의 시집을 읽고 전국 곳곳 의 미술관을 찿아다니는 리더는 K팝에서 보기 드문 존재였다.
세계적인 스타지만 그는 항상
스스로 를 '평범한 대한민국 청년'
이라고 말해왔다.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혼자
전시회를 둘러보는 소탈한 일상
역시 그의 매력이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4900만 명을
보유한 그의 영향력은 미술계의
풍경까지 바꿔놓고 있다.
그가 다녀간 전시에는 소셜미디어
를 보고 찿아온 팬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미술계에서는 'RM이 본
전시와 안 본 전시로 나뉜다."

그가 다녀간 전시를 따라가는
투어 열풍도 생겼다.
소속사는 그가 소장한 작품과
미술관 측이 보유한 작품을 합해
200여 점을 공개했다.
■광화문광장 공연에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대표적인 장면은무엇일까?
국립국악원 단원들이 부른 '아리랑'
이 아닐까 싶다. 아리랑은 2012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됐고 60여 종 3600여 곡이 전승되고
있는데 BTS 공연에 쓰인 '아리랑'
이 도대체 어떤 노래냐는 것이다., 그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로
끝나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아리랑' 이었다. 꼭 100년 전인
1926년 24살 나운규가  혼자서
감독.원작.각색.주연의 1인4역을
맡아 무성영화 시대의 최고 걸작
인 '아리랑'을 제작 개봉했다.

이 영화의 주제가가 BTS 공연에
등장한 그 '아리랑' 이었다.
영화 주제가인 '아리랑'은 나운규가
어린 시절 철도 노동자들이 부르던
구슬픈 '아리랑'의 기억을 되살리고
재해석해 민족의 정서를 담아 만든
신곡이었다.

영화 '아리랑' 의 개봉일이 1926.
10.1일 이다. 그날이 조선총독부
청사 준공식이 열린 날이기도 했다. 나운규는 이날 영화 선전대가
단성사에서 광화문통까지 행진하며 주제가 '아리랑'을 연주하도록
했다. 100년 뒤 조선총독부 청사
가 철거된 자리 앞에서 다시 부른
'아리랑' 노래가 세계로 전파됐다.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울컥한 마음 가슴이 뜨겁다.
나운규는 한류와 K컬처의 부흥을
내다본 선각자였구나!

나운규선생님, 
BTS가 과거 정부 시절 대통령 특사로 텅 빈 유엔에서 발표하고 춤도 추었습니다. '광대'가 나랏일에
동원돼다니오. 
광화문을 시작으로 세계 투어에
돌입한 BTS 공연표가 벌써 매진
사태랍니다.

나운규 선생님!  보고 계섰습니까? 

■ 관광이 한 지역, 한 나라를
     먹여살리는 시대에 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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