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농부의 깨알 인문학

■ 도시농부의 깨알 인문학

오늘, 씨감자를 심었다.
땅에 골을 만들고 씨감자를 묻었다.
감자는 다른 채소와 달리 특별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씨감자를 눈이 나오도록 칼로 쪼가리 낸 뒤 재를 묻혀 땅에 심는다.
자른 면을 소독해야 썩는 것도 방지하고 초기 생육을 촉진해 주기 때문이다.

재를 바르면 재의 알카리 성분이
곰팡이균과 같은 세균의 침입을 막아 씨감자가 땅속에서 썩는 걸 예방한다
재에 포함된 칼륨 등의 영양분이
감자 성장에도 도움을 준다.
재는 주로 볏짚을 태워 쓴다.
3월 말에 심었으니, 5월 말이 되면
감자꽃이 피는데 이 때가 알이 굵어지는 시기다.

감자꽃이 피는 때와 감자가 굵어지는 시기가 겹치다 보니 감자꽃을 꺾어줘야 한다. 그래서 감자꽂은 오래 감상할 수가 없다.
                                   <감자꽃>
적당히 꽃머리를 내밀었다 싶으면
이내 따야 하므로 꺾어줘야 예쁜 게 감자꽃이다. 
자주꽃이 피면 자주빛 감자가 맺고, 하얀꽃이 피면 하얀 감자가 맺는다. 

꽃과 열매로 갈 영양분을 땅속
감자알로 집중시켜 씨알을 굵게
만들고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꽃을
꺾는다.

감자가 구황작물로 인기가 높은
이유는, 재배 기간이 100일 정도로
짧기 때문이다.
쌀이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익지
않은 춘궁기인 6월에 수확할 수
있어 백성들에게는 하늘이 내린
선물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쌀은 공출(수탈)해
갔지만 감자는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1920~30년대는 경제적 수탈이
자리 잡고 있던 시기다.
농촌이 붕괴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된 유랑민들이 늘어났다.

남편은 지게꾼으로, 아내는 '들병이'가 되어 떠돌아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병에 술을 담아 들고 다니며 웃음과 몸을 팔기도 했던 여성을 '들병이'라고 했다. 들병이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김유정은 당시, 농촌 경제가 얼마나 처참하게 붕괴되었는지에 대한 시대상을 소설 속에 담았다.
여성의 정조나 도덕 보다 당장 입에
풀칠할 수 있었던 감자 한 바구니가
더 절실했던 시대였던 것이다.
                                <씨 감자>

김동인의 소설 [감자]'(1925)도 환경에 의해 인간의 도덕성이
어떻게 무너지는 지를 냉철하게
묘사하고 있다.
가난하지만 정직한 농가에서 태어난 복녀가, 게으른 남편에게 팔려 시집을 와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다 국유림(송전밭)의 송충이잡이 감독관에게 몸을 팔며 물질적 이득을 얻으며 살았다.
그러다가 왕서방의 감자밭에서 감자를 훔치다 들킨 것을 계기로 그와 내연관계를 이어간다. 왕서방이 새 장가를 들자, 질투에 눈이 멀어 낫을 휘두르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재 묻힌 씨감자>

[감자]는 단순한 농작물을 넘어 복녀의 욕망과 타락의 매개체였다. 당시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채만식의 [레드메이드 인생]에도 들병이가 묘사되고 있다.
[탁류]에는 정숙한 여인 초봉이가
가난으로 처참하게 망가져가는 과정을 비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군산 미두장(쌀 투기장) 주변의
빈민가 모습은 부산항 주변의
하층민 삶과 매우 흡사한 구조다.
                                감자떡

부산의 가파른 산비탈에 집을 짓고
살던 피란민이나 이주민들도 집 주변 자투리 땅에다 감자를 심었다.
지금이야... 감자로 '감자떡"을 해먹고 햄버거 가게에서 '감자 튀김'으로 먹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았다. 제주도에서는 감자를
'지슬'이라고 불렀다. 영화 <지슬>을 보며 알게 되었다.
                            <감자 튀김>
오늘 심은 감자는 6월 하순~7월초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캐야 썩지 않고 오래 보관할 수 있다. 나는 지금도 감자와 고구마가 한끼 식사일 때가 많다.
감자를 심고 나니, 금쪽같은 봄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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