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톨릭--역관이야기

■ 김범우는 역관입니다.

<김범우의 묘지기를 하고 있는
 송기인 신부 자택에서>

최인호의 소설  '상도' 는 조선말 '역관' 이야기를 백과사전식으로  풀이 해줘 큰 도움을 받습니다.
상업을 멸시했던 조선 500년은
수도 한양에 서점이 없었습니다.
역관이 본 베이징의 책방에는 서양 서적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놀라운 광경을 본 역관은 조선의
사대부와 생각이 달랐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변하고 있는데 
조선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 였고
중국말 잘 듣는 '동방예의지국'의 나라였습니다.
지배층은 쇄국으로 대문을 닫고
신학문을 하면 죽었습니다.
'서세동점' 시대에  '위정척사' 의
길만 갔습니다. 
<김범우 묘소>

그 길 위에 김범우가 있었어요.
조선 최초의 순교자라 할 수 있는
김범우의 묘소에서  한국 천주교를
봅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외국 선교사들의
도움 없이 평신도의 힘으로 산앙을
받아들었습니다. 선교사의 파견 없이 자발적으로 신앙을 찿고
영세를 받은, 세계 교회사에서도
유례를 찿기 힘든 사례입니다.

<1953년 명동성당>
<겨울 명동성당>

이승훈이 1784년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와 이벽.정약전 등과 신앙 공동체를 만들고 정식으로 천주교를 수용합니다. 첫 세례자 이승훈이 이벽의 집에서 서양 선교사에게서 배운 대로 최초로 세례식을 집전하여 이벽.권일신. 정약용등에게 세례를줍니다. 이로써 세례를 받은 신자들로 구성된 한국 천주교가 설립됩니다.


신자들이 늘어나자 이벽의 집에서
김범우가 자신의 집을 집회장소로
제공하여 '명례방공동체'가 결성이
됩니다. 그 장소가 을지로2가 하나은행 본점 자리입니다.
지금의 중구 명동일대로 중심부에 명동성당이 들어섭니다.
<다산 정약용 천주교박해-생가터>

1785년 봄 명례방 집회가 발각돼
신앙공동체는 해체되고 이승훈과
이벽은 집안 식구들로 부터 배교를
강요당합니다. 한국 천주교의 선구자인 이벽(세례자 요한)은 부친
에 의해 집안에 감금된 생활을 하다가 사망합니다. 역관 김범우는
밀양으로 유배됩니다.

이벽은 서양학문에 끌린 양반들의
친교를 통하여 천주교에 입교하여
신앙생활을 하였고 자신의 집을
초기 천주교의 전례 장소로 제공함으로써 천주교를 학문적 연구의 수준에서 신앙을 확산하는 차원으로 발전시킵니다.
많은 중인 계층을 입교시켜 천주교의 보편화에 앞장섭니다.
지구본을 돌리니 세계의 중심이
중국이 아니었습니다. 혁명적인
학문을 본 그는 죽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김범우는 서울에서 출생했습니다.
영조때 역과에 합격하여 중국어
역관으로 종6품을 지냅니다.
이벽을 통하여 천주교에 입교하고
이승훈으로부터 세례를 받습니다.
명동성당근처 명례방에 위치한
자신의 집을 신앙집회 장소로 제공하였는데 서학 서적이 비치되어
있어 신분을 초월한 많은 사람들이
방문을 합니다.
교회의 집회가 시작되고 정조때
김범우의 집에서 수십 명이 이벽의
설교를 듣다가 체포돼 배교를 강요받습니다
뜻을 굽히지 않자 가혹한 고문을
받고 밀양 단장으로 유배됩니다.

조선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인 김범우의 묘가 삼랑진읍 용전리
마을에 있습니다.
산지로 둘러싸인 한적한 시골마을
에 살며 김범우 묘지기를 하고 있는 송기인신부는 박정희가 유신
을 반포했던 1972,12.8일 부산
중앙성당에서 서품을 받습니다.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 민중신학등 새로운 조류를 실천하는 역사의 현장 속에는 늘 송기인신부가 있었습니다. 군부통치시절 내내
성당을 시민들에게 개방하여 시민학교를 개설합니다.
대학문은 닫혀있어도 성당문은
열려있었습니다.

송기인신부는 부산의 역사입니다.
   <송기인 신부>       
        
한국 천주교회의 공식적인 최초 순교자는 윤지충입니다, 그러나 비록
사형선고는 받지 않았으나 박해와
형벌의 후유증으로 죽음에 이른
김범우가 최초의 순교자로 봅니다.
김범우는 영조때 중국어 역관으로 종6품 이벽을 통하여 천주교에 입교
이승훈으로부터 세례를 받습니다
자신의 집을 신앙집회 장소로 제공
했던 김범우는 정조가 죽고 어린
순조가 즉위하면서 정순왕후 김씨에
의해 무자비한 천주교 탄압이 시작
됩니다.  지배계층은 천주교의 평등
사상을 조선 사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입니다. 특히 제사문제와
'무군 무부' 사상이 박해의 명분이 였습니다.  이것이 신유박해입니다.
<명례방 집회 모습>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자인 김범우는 조선시대 역관(통역관)출신으로
북경을 오가며 서양 선교사들로부터 서적들을 구해와 자신의 집이 명례방에서 실학자들과 공부했습니다.
역관은 중인 신분으로 전문성은
인정 받았으나 지배층인 노론세력의 감시 대상이였습니다.
지식의 창구역할을 했던 김범우는
혹독한 형벌을 받고 밀양으로 유배
됩니다.  밀양 단장면에서 숨을 거두었으니 밀양은 순교의 땅입니다.
삼랑진에 순교자 김범우의 묘소가 있습니다.
묘지기를 하고 있는 송기인 신부님을 찿았습니다.

 ■ 이탈리아에 처음 갔을때 어마어마한 성당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성베드로 대성당은 예수의 수제자
성 베드로가 순교하고 묻힌 자리에
세워진 세계 최대의 성당이다.
현재 교황 레오 14세가 미사를 집자하는 성당이다.
대체 왜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새
대성당을 지어야만 했을까.
도시 재개발까지 병행하면서 엄청난 규모의 대성당을 지은 이유는
당대의 가톨릭이 고대 로마와 같은
고전적 권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과 1626년에 완공했다.

성베드로대성당은 단순한 종교 시설이 아니라 인류의 건축 및 예술 역사가 집약된 박물관이다.
성베드로대성당을 통해 한국 가톨릭의 역사도 생각해 보자는 이야기다. 베드로 무덤 위 400년을 지킨
성당은 압축된 가톨릭교회와 교황청의 역사다.
면죄부를 팔아 종교개혁의 원인을
제공했다.
100년마다 돌아오는 속죄, 회개,
사면의 성스러운 해인 희년을 만들었다. 교황청은 다시 50년으로, 다시 35년과 25년으로 단축했다.
흔들리면 않된다.

우리는 있어야할 자리에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기행작가----권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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