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안사--조태일문학관

[곡성 태안사]----<조태일 문학관>

아픈 현대사의 현장을 찿아 계곡을 타고 걸었습니다.
태안사 초입부터 곡성경찰서의 지휘본부가 있던 사찰까지의 옛길은 너무 아름다워 차라리 눈물겹고
아련한 옛 길입니다.

편도 30분 거리의 계곡길은 문명을 버리고 반드시 걸어봐야 합니다.
천 년이 넘게 스님과 신도들과 국군과 빨치산들이 걷던 역사의 옛 길입니다.
태안사 주지의 아들로 태어난 살림집으로 오르고 있다.
태안사는 구산선문의 하나로 동리산파의 중심 사찰로, 송광사와 화엄사를 말사로 거느릴 만큼 큰 사찰이였다.
한국전쟁때 인민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곡성경찰대의 지휘본부가 태안사에 설치된다.
사찰 주지의 아들로 태어난 조태일시인은 태안사의
'태'자를 빌려와 '태일'이란 이름 을 얻게 된다.
70~80년대 민주화운동 시절 공안기관에 끌려가는 맨 앞자리는 늘 조태일이였다.
빨치산들과 송기숙, 문익환, 김지하, 양성우, 고은, 신경림, 백낙청, 문순태,곽재구, 양성우가 걸었던 옛 길이다. 길 위에는 늘 이야기가있다
'조태일문학관'이다. 

합동수사본부에 연행되어 서울구치소로 이송될 때 백주대로에서 문인들은 손목에 쇠고랑을 차고 있었다. 푸른 수의 왼쪽 가슴에 계엄포고령 위반을 나타내는 노랑색 딱지를 달고 지냈다.
80년 5월 계엄군의 총탄에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이때 문인이 감옥에 가는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며 쓴 '시'가 <보리밥>이다.
시를 통해 척박한 땅에서 자라나
서민들의 배를 체워주던 보리밥의
생명력과 서정성을 노래했다.

"꽁보리밥 한 그릇 속에 우주의 모든 서러움이 들어 있고 
우주의 모든 기쁨이 들어 있네,"


대처승 주지조봉호스님의 아들로
태어나 사찰에서 성장했다.
그의 저항시와 국토 연작 시편들의
출발점이자 귀착점이 태안사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 기행작가와 함께하는 금산.영동 문학기행.

도시농부의 깨알 인문학

방탄소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