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동 책방골목

'보배로운 물이 흐르는' 곳이라
보수동이란 지명이 생겼지만 보배
로운 책들로 가득찬 동내가 보수동입니다.

오랜 세월, 역사가 축적된 보수동 책방 골목에 <양서협동조합>과 <부산 중부교회>라는 고급 문화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함석헌
▪︎전환시대의 논리-리영희
▪︎노동의 새벽(시집)-박노해
▪︎역사란 무엇인가?

이런 책을 읽고 독서토론을 했다
고, 독서모임 대학생들과 노동자들을 북한을 찬양하는 자생적 공산주의로 몰아 감옥을 갔던 시절입니다.<'변호인'---영화>

중부교회는 1970~80년대 부산지역 민주화운동의 집결지 역할을 하던 곳이었습니다.
유신독재와 맞서 싸우던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이며 부산 시민들의 정신적 안식처가 된 곳으로
부산의 명동성당이라고 불렸지요. 중부교회는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문익환 목사가 단골로 시국 강연을 했던 곳입니다.
문익환.안병무.한완상.김동길.김광일. 그 아래 노무현. 문재인이 있고
고은도 있었습니다.

1987년 6,29선언이 나오고, 7월 이한열 열사가 숨을 거듭니다. 그는 민주화 운동가로는 처음으로 망월동 5,18묘역에 잠들어 있습니다.
영결식장에서 어머니가 쏟아낸 첫 마디는 참척의 고통이었습니다. 하루에 30만 발의 최류탄과 지랄탄을 쏘아대고, 백골단이라는 말이 신문을 도배하던 때였습니다.

서울대생 박종철이 누구인지도 몰랐던 때에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치안본부장의 말에 온 국민들이 분노했습니다.
21살 청년 박종철의 죽음은 역사의 물줄기를 돌려 놓았습니다.
1987.1.15. 박종철은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에서 심한 물 고문으로 질식사합니다.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이부영 의원, 용산병원 내과의사 오연상, 한재동 교도관이 있었기에 6.29선언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미사 강론에서 반정부 선언을 성경 구절을 인용해 강도 높게 비판합니다.
하느님께서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에게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물으시니 카인은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하고 잡아 떼며 모른다고 대답합니다.
창세기의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의 아들, 너의 제자, 너의 젊은이, 너의 국민의 한 사람인 박종철은 어디 있느냐?"
"탁하고 책상을 치자, 억하고 쓰러졌으니 나는 모릅니다." 
"수사관들이 좀 지나쳤을 뿐인데 그까짓 거 가지고 뭘 그러십니까. 국가를 위해 일을 하다 보면 실수로 희생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이것이 바로 카인의 대답입니다.

연이은 대학생들의 분신이 일어나자 김지하 시인은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거두라"라는 칼럼을 쓰고 변절자로 모진 수난을 당합니다. 
박종철이 공부하던 교실 앞에는 동문 이산하 시인의 <박종철을 생각하며>라는 글을 새긴 석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박종철의 동문으로 공병호, 곽규택, 김윤식, 오달수, 조진웅, 이산하가 있고, 1년 선배가 조국입니다.
이산하 시인은 경남중, 혜광고를 다닐 때 전국문학상을 휩쓸었고 경희대 국문학과 장학생으로 입학했고 4년 동안 시련의 가시밭길을 걷습니다.
제주 4,3사건 추념식때 가수 이효리가 그의 시 <생은 아물지 않는다>를 낭송하던 장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핏자국으로 얼룩진 한국현대사를 담은 시 속에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이 사람이고, 그 중에서도 잔인한 동물이 나 자신이다."
"인간은 가장 큰 바퀴벌래다." 
1961년 이후,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극적으로 타협하였고, 1987년에 이 분들의 흔적이 있고, 그 길 위를 도반들과 걸었습니다. 돌아보니 두 세력이 30년 간 싸웠습니다.
1987년에는 내전 직전까지 갔습니다. 수백만 시민이 직선제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군사정부는 군대 동원 일보 직전까지 갈때 넥타이 부대가 거리로 나섭니다.  6.29선언이 나라를 살립니다.

조선 오백년 성리학이 민주주의 국가로 바뀝니다.
늘 길위에는 역사가 있고, 사람들이 살아갔던 삶의 이야기들이 땅 밑에서 말은 겁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기상대 자리는 오피스텔 건물이 들어서 있고, 동대신동 삼익아파트자리에 있던 부산교도도, 검정다리도, 명월루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부산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마지막
방파제였습니다.
김주열열사 어머니 권찬주여사
장발단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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