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장림포구, 부네치아를 아시나요?
사하구 장림동에 위치한 장림포구는 본래 '다대진'이 있던 곳이다.
장림동에 있다가 지금의 다대포로 옮겨 간 것이다. <경상도 지리지>
탱글 탱글한 봄날, 장림포구를 걷는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장소다.
낙동강의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리적 특성으로 김양식이 유명했다. 물과 뭍이 연결되고 해풍에 사람과 파도와 물고기가 드나드는 '반농반어' 마을이였다.
'부네치아'로 불리는 장림포구는 한때 부산 최고의 어장이었다. 강 하구를 둑으로 가로막기 전까지 김 생산지였고, 급물살로 물이 빠지는 만조에는 밤새도록 멸치를 잡던 황금어장이었다.
장림포구는 낙동강과 다대포 바다 두 갈래가 만나는 아우라지 물목이다. 원래 명칭은 '장림항'이지만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이름을 빌려 와 '부네치아'로 이름 지었다.
포구의 평범한 풍경에 색을 입혀 멋진 사진을 남기기 좋은 곳으로 관광자원화를 했지만 이곳을 찾는 관광객도 시민도 없다.
세금으로 마구 떡(색)칠을 해 놨
지만 망한 행정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외롭다는 것은 자유롭다는 것이다. 자유로운 나그네의 눈에도 장림포해전의 역사가 보인다. 그런데 왜 행정가들은 보지 못하는 걸까. 역사의 흔적은 간데없고 부네치아라는 괴물같은 이름만 썰렁하다.
장림포구는 펄펄 끓는 소금물에 급히 멸치를 삶아 건조한 염포는 하룻밤에도 십수 포씩 어시장 경매에 넘겨졌다. 물살이 약할 때는 끌망으로 도다리와 홍대라 불리던 큰 새우도 쉽게 잡았던 곳이었다.
그보다 더 이전인 1592년 임진란 때, 조선 수군은 사하구 장림동 앞바다에서 왜선 6척을 격침시킨다. 장림포해전 이후 이어진 화준구미, 다대포, 서평포, 절영도해전을 거쳐 일본 수군의 심장부인 부산포 앞마당까지 거침 없이 진격한다.
장림포해전은 부산포 공격을 위한 전초전이었다.
낙동강 하구 쪽을 수색하던 조선 수군이 장림포에서 왜선 6척을 격침시키고 가덕도로 회향한 이후 최종적으로 부산포 본진을 공격한다. 부산포해전 이후 오랫동안 남해안에는 해전이 거의 없었다.
부산광역시는 '부산포해전'의 승전일인 10월 5일을 '부산시민의 날'로 지정했다.
장림포구 뒤편 아미산 '응봉봉수대'
가 있었지만 임진난때 작동하지 못
했다. 류성룡의 '징비록'에 통신수단이였던 봉수기능이 무너져 적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몰랐다고 기록하고 있다.
장림포해전을 기리는 표지석 하나 없는 부네치아에 바람만 거칠다.
머릿속에 묶여있던 몇 가닥 생각들이 해풍에 절로 녹는다. 포구를 지나 길따라 홀로 걷는다
기행작가, 권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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