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스라엘

[이란과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이란'은 페르시아인이고, 유럽 계통의 민족이니 아랍과는 다르다. 
종교 지도자가 이란의 최고 통치자이며, 신정체제 국가다.
지구상에서 종교 지도자가 통치
하는 나라는 이란이 유일하다.

대통령, 대법원장, 국회의장 위에
종교지도자 하메네이가 있었다.
이란의 최고지도자였던 그가 2026.3.1 폭격으로 사망했다.
하메네이는 37년간 이란을 이끈 상징적인 인물이다. 차기 지도자로 그의 아들 하메네이가 선출됐다.

이란은 쉽게 정복당하지 않을 땅을 가지고 있다. 험준한 산세와 해협이 요새와 같다. 인구가 9300만명
에 영토의 상당 부분이 고원과 사막으로 대규모 병력이 작전을 펼치
기 어려운 천연 장벽 역할을 한다.
그러나, 첨단 군사 기술은 순식간에 이란의 심장부를 무너뜨렸다.
그러나 자그로스 산맥 지하는 견고하다. 지하 500m 두께의 화강암
암반층은 미국의 벙커버스터로도
뚫기가 어렵다. 이란의 필살기는
미사일이다. 이란의 목숨줄이다.
이란의 자그로스 산맥은 길이가
1600km, 너비가 240km에 이른다. 최고봉이 해발 4409m다.

뉴스를 보면서 포화 너머로 나는
하메네이 이전 한 노인의 그림자를 떠올렸다. 
이란을 통치했던 혁명의 아버지 호메이니(1902-1989)이다.

왕조 국가를 끝내고 이슬람공화국을
만든 인물이다.
"오일머니를 왕족에게만 주도록
한 것은 미국 때문이고, 꼬봉이
이스라엘이다. 이들이 '우리의 적" 이라고 선언하면서부터 미국과
이스라엘과는 등을 돌렸다.

철권 통치는 총칼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그런데 성직자였던 호메
이니가 정권을 잡는 과정을 보면
총칼이 아닌 '말'이었다. 말로 잡은 권력에 가깝다.
이란에 유전이 발견되면서 팔레비가 정권을 잡고 왕이 된다.
1973년 오일쇼크로 팔레비 왕조는
떼돈을 번다. 그런데 이 돈이 팔레비
제단으로 들어가고 국민에게는 돌아가지 않는다.
78년에 반정부 시위가 극에 달하자 팔레비 2세 국왕이 미국으로 망명 
한다.  이때 '호메이니'가 귀국한다.
호메이니가 정규군을 못 믿어 만든
친위부대가 '혁명수비대'다.

1979년 이란 시민들은 시위 끝에 2,500년 왕조를 몰아냈다.
이란은 2천 년 동안 '페르시아'
왕조국가 였다. 그러다 유전이
터지면서 팔레비가 정권을 잡고
나라 이름을 '이란'으로 바꾼다.

팔레비 2세가 친미 국가로 만들자,
학생들이 시위를 하였고, 배후 인물이 바로 '호메이니'다.
석유로 때돈을 번 팔레비 왕조가
1978년 반정부 영화를 보던 420명의 시민에게 극장문을 밖에서 잠그고 모두 불태워 죽인다. 계엄령이 선포됐지만 민심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때, 15년 동안 나라 밖을 떠돌던 망명자, 호메이니가 돌아온다. 그는 어떻게 이 혼란을 정리한 것일까?


이란인들은 팔레비 왕조에 진저리가 난 지 오래였던 시기다. 팔레비의
급진적인 서구화는 정체성을 짓밟았고 상류층이 개방의 과실을
독식했다. 바로 그 틈을 타 파리발
한 남자의 '말'이 이란을 매혹시킨다.
녹음 테이프였다.

"부를 몰수해 나눠주겠다. 왕족의 배를 가르면 국민의 피가 쏟아질 것이다."
"물과 전기를 무료로 주겠다. 경제적 안락함은 권리다."
"판사와 검찰의 목을 쳐야 한다. 국왕의 사냥개들이다"
"독 묻은 언론의 펜을 꺾고 혀를
자르는 것이 혁명의 완성이다."

훗날 혁명의 선봉에 선 상인들을
중심으로 카세트 테이프가 돌았다.
집안 깊숙한 곳에서 혹은 삼삼오오
모여 숨죽인 채 들었다. 테이프 속 메시지는 선명했다.
호메이니의 일갈은 시민 의식을 깨웠다. 사법기관과 언론, 왕조가 한통 속이었으니 논객 호메이니의 꾸짖음이 곧 정의가 되었다.

"권력에는 관심 없다. 승리 후에는
기도하며 살 것이다."
사심없는 이 영도자의 선언은 압권이었다. 15년의 망명 생활은 그를 박해받는 고결한 지식인으로 포장해 주었다. 내부 사정에 어두울 거란 우려조차 "세속에 물들지 않은 신성함"으로 승화되었다. 
그렇게 '총칼 한 번 휘두르지 않고' 
호메이니는 '말'로 내부를 움직였다.
엄청난 환호 속에서 테헤란 공항에
내리던 장면은 혁명의 '화룡점정'이었다.

유창하고 세련된 팔레비 국왕의
엘리트 화법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호메이니 화술은 주어와 서술어가
뒤섞여 불완전했고, 선동하는 고음
대신 낮고 담담하며 투박했다.
굳이 잘 보이려 애쓰지 않는 태도는
신비로운 권위를 주었다. 성스러운 명분을 내세웠던 혁명수비대는 어느덧 국가의 부를 독점한 이권 카르텔이 되었다.

서구를 '대악마'라 저주하면서 정작
제 자식들에겐 악마의 땅 시민권을
쥐어주고 미국으로 유럽으로 유학을
보냈다. 
1979년 카세트 테이프 속 목소리에
희망을 건 이란인들이 2026년
테헤란에 떨어진 포화를 맞고 있다.
호메이니의 혁명은 왜 변질됐을까?

거의 한 달을 두들겨 맞고도 버티는
이란이 궁금했다. 폭격으로 죽은 이란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는 죽을 복도 타고 난 듯하다.
전립선암도 있던 87세 노인이 1989년부터 권좌에 앉아 37년간 칼자루를 휘둘렀으니 원도 한도 없이 살았다고 본다. 지하 벙커의 자기 처소에서 죽었는데도, 순교가 된 셈이다. 미국의 폭격이 하메네이의 죽음을 장엄한 순교로 격상시켜 줬다. 그 순교가 이란 국민을 똘똘 뭉치게 하여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순교는 종교인으로서 최고의 영예다. 이란은 최고 지도자가 권력의 정점이다. 동시에 다양한 권력 주체들의 결합이기도 하다.
성직자, 혁명수비대, 이권 결집체인
각종 재단, 선출직 대통령이 유기적
으로 연결되어 있다.
평상시에는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지만 외부 침략을 당하면
지배 연합은 깨지는 게 아니라 더욱
단단한 결속력을 보인다.

이란혁명 직후 이라크와 8년 전쟁을 
벌이면서 터득한 생존 본능이다.

무지막지한 전쟁의 참상을 오늘도 보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무너뜨리려 하자, 이란은 주변 미국의 우방국은 물론, 세계 경제를 무너뜨리겠노라 맞서고 있다.
'알리 하메네이'의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전장을 사방으로 넓히는 전략을 펴고 있다.
이스라엘과 접경지역에 있는 레바논 헤즈볼라, 이라크 친 이란 무장세력, 가자지구 하마스, 팔레스타인, 등 반미. 반이스라엘 성향 무장 세력들은 호메이니가 '혁명 수출'을 내걸고 군사.재정적 지원으로 육성시킨 세력들이다.

2002년 부시 미 대통령이  이란.
이라크,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자 "우리는 미국 패권에 맞서는 저항의 주체"라고 반박
하면서 '저항의 축'이란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이란이 핵 개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란.이라크 8년 전쟁때 미국이
이라크를 지원했다. 그런데 왜
북한은 지금도 안전한가?
미국은 주한 미군 주임무를 대북에서 대중국으로 오래전부터 바꾸고 실행에 옮기는 중이다.
일본에 미군이 5만 명 주둔하고 있는 반면 한국에는 2만 8500명 정도 주둔하고 있다.
지금 군사 기술은 30년 전에 비해
천지개벽 수준으로 발전했다.
장거리 초음속 정밀 타격이 일반화
됐다. 이스라엘도 1500km 떨어진
이란을 정밀 타격하고 있다.
이제 괌에서 평양을 20여 분 안에
타격하는 극초음속 미사일도 전력화 되고 있다.
과거처럼 수송선으로 며칠 걸릴
필요 없이 대형 수송기로 즉각
병력 투입이 가능하다.
그 병력이 사용할 기갑과 화력 장비들은 한국 내에 비축돼 있다.
한국의 자주포와 다연장로켓, 탱크 등 포병 및 기갑화력은 규모와
성능이 세계 정상급이다.
북 미사일을 막을 요격 미사일은
미국, 이스라엘 다음 수준이다.
미국 입장에서 북한의 미사일 사정
거리 안에 있는 한국 기지에 자신들
육군 병력을 둘 이유가 없다.
그들에겐 상식의 문제다.
주한 미 해군은 처음부터 없었고, 공군만 있는데 그나마 4개 비행 대대에서 3개 대대로 줄었고, 군산 기지와 오산 기지를 하나로 통폐합했다.
북한 미사일의 집중 공격을 받을
한국 내 비행장에 미국이 최첨단
전투기를 둘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핵을 보유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대비는 무엇이 있는가?다.

미국이 동맹국 주둔 미군 전력을
중동으로 차출하기 시작했다.
성주의 사드 체계도 포함됐다.
사드를 성주에 설치한다고 극렬하게 반대했던 그 많은 시민단체는 미군 무기가 반출된다는데, 박수 치고 환호해야 마땅한데 어디에서도 그런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내 몸이 튀겨진다"며 낭설을 퍼날랐던 정치인 다수는 여전히 금배지를 달고 활동하고 있지만
환영한다는 말이 없다.

이란의 혁명수비대가 국가의 부를
독점한 것처럼, 안보라는 명분을 내세워 자기 이익만 챙기는 패거리 집단을 감시해야 한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지식이라
하고, 자기가 생각해낸 것은 지혜라고 한다. 모든 지혜의 정점에
있는 것이 공존이다.  
공존의 지혜를 만들어 나가자.
한국이 한 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수입하는 중동산 원유는 약
7억 배럴 수준으로 유조선 최소
350척이 이 해협을 통과한다.
한국의 정유 4사가 부담해야 할
통행료가 연간 1조 500억에 달한다. 전량이 국내 휘발유.경유 가격
에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이란과 북한은 오랜 군사적 동맹국가다. 수십 년에 걸쳐 미사일 기술과 군수품을 교환하며 협력국가를유지해 오고 있다.

미국의 대규모 공격을 계기로 혁명
수비대를 중심으로한 폐쇄적 병영
국가로 전환할 가능성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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