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 유배문학
기장 유배문학 현장--윤선도
문화가 밥 먹여주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있다. 두호(두모포)마을에
두모포진성 과 고산 윤선도를 만난다. 고산은 죽성리로 유배와 6년 살았다.
윤선도는 30대. 50대. 70대.
모두 16년 유배생활과 19년 은거
의 삶을 살다 갔는데 두모포에
흔적을 짙게 남겼다
한양에서 온 의원님으로 불렸다.
기장에는 '기포'라는 지명이 있는데
지금의 '이동마을'을 말한다.
소설 '갯마을'의 무대이고 영화 촬영장이였고 최백호의 추억도 짙은 곳이다.
심노승이 6년 간 유배생활하며 쓴 "남천일록'에 기장 바둑돌 이야기가 나온다. 조선 바둑 돌 절반은 일광에서 나왔다는 말이 있다. 지금도 일광해수욕장 일대에 수석집이 많은 이유를 알 수 있다.
고산도 기장 죽성리에서 6년 살았다. 달음산 오르내리며 약초 캐고 주민들 병 치료해주니 한양에서 온 의원님 소리 들으며 살았다.
칠암은 붕장어를 잡지 않고 아구만 잡는데 칠암붕장어, 아나고회, 장어구이 집들만 있다.
"대변항'은 멸치회. 멸치쌈밥으로
특성화했고 '연화리'는 전복죽인데
장어구이 1번지는 '월전항'이다.
몸을 배배 꼰 장어가 수면을 박차고 치솟는 형상으로 만든 월전 등대를 '장어 등대'라고 부른다.
라훈아의 '기장갈매기' 뮤직비디오
촬영을 월전등대. 월전항에서 했다.
제주도에서 4.3사건이 터지고
부산으로 숨어든 제주 해녀들이
부산 남자 만나 영도. 일광. 칠암에 살면서 오늘의 역사를 만들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을
한 낮에 걸었다.
어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죽성항이 조선시대에는 두모포였다.
두모포에 해군 만호가주둔했다.
임진왜란 후 동내 전체를
지금의 수정동시장 쪽으로 옮겼다.
수정동에 두모포왜관이 탄생한 배경이다. 지금의 고관일대를 '두모포왜관'이 있던 곳이라 생긴 지명이다
죽성리 황학대에 '두모포슈퍼' 가
있어 역사현장을 해설할때 마다
교본으로 삼는 곳이다.
조선은 사.농.공.상. 계급사회였다.
국가가 노비를 만들고 물건처럼 교환했다. 그런 나라에 '사'의 집단이였던 사대부들은 상업을 멸시했다
박태준기념관에 답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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